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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사설] '비용'과 '시혜'를 넘어, '존엄'과 '자립'이 숨 쉬는 포용적 사회로
주요 이슈: 2026년 10월 글로벌 및 국내 장애인 정책 대전환과 포용적 사회를 향한 논쟁 (호주 NDIS 예산 감축 및 한국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정책대회)

최근 며칠 사이, 전 세계적으로 '포용적 사회 건설'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거대한 정책적 논쟁이 점화되었다. 지난 2026년 10월 1일을 기점으로 호주에서는 국가장애보험(NDIS)의 대대적인 예산 감축 조치가 본격적으로 발효되었다. 재정 지속가능성이라는 명목하에 장애인의 사회·공동체 참여 지원 예산이 삭감되면서, 여러 장애인 인권 단체들은 "삶의 통제권과 선택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지난 10월 1일부터 2일까지 '2026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대회'가 열려, 정부의 발달장애인 돌봄 정책이 단순한 지원을 넘어 당사자의 '자립과 권리 보장, 자기결정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두 사건은 오늘날 현대 국가들이 직면한 사회적 안전망의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많은 국가가 겉으로는 '포용적 사회'를 주창하지만, 막상 경제적 위기나 재정 압박이 닥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을 가장 먼저 '비용'과 '효율성'의 잣대 위에 올려놓는다.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장애인을 여전히 보호와 시혜의 대상으로만 전락시킬 뿐,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관행이 팽배하다. 하지만 생존을 연명하게 하는 최소한의 돌봄만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진정한 포용은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성경은 연약한 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근본적인 전환을 촉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외된 자들을 대하실 때, 그분은 결코 그들을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으셨다. 길가에 앉은 맹인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신 장면은, 철저히 무력해진 존재에게 '자기결정권'과 '주체성'을 회복시켜 주신 따뜻하고도 파격적인 은혜의 선언이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다. 국가의 거시적 정책과 예산의 분배 역시 이 천부적 존엄성을 회복하고 지키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은 시혜를 베푸는 자선 냄비가 아니라, 누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튼튼한 반석이어야 한다. 장애가 한 개인의 한계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할 때다. 호주의 NDIS 사태와 한국의 발달장애인 정책대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우상 앞에서 인간의 가치를 저울질하지 말라. 이제는 비용과 관리의 논리를 넘어,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각자의 색깔로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진짜 포용적 사회'를 향해 담대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시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 마가복음 10:51
#포용적사회 #장애인인권 #사회적안전망 #인간존엄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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