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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하늘을 찌르는 오만, 그 위태로운 축적의 끝

OCJ 2026. 9. 15. 03:37

짙게 드리운 먹구름을 거칠게 뚫고, 나선형의 거대한 건축물이 기괴한 위용을 자랑하며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흙빛의 탑은 캔버스 전체를 압도하며 보는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합니다. 바로 16세기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거장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이 남긴 명작, <바벨탑>입니다. 

 


그림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대한 탑의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개미처럼 작게 묘사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 위에서 거만하게 지시를 내리는 니므롯 왕의 모습조차 대자연과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일 뿐입니다. 브뢰헬이 활동하던 16세기는 종교 개혁의 소용돌이와 스페인의 억압적인 통치가 맞물려 정치적, 종교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권력에 기대거나 물질에 집착했습니다. 브뢰헬은 마치 창조주가 하늘에서 어리석은 인간 세상을 굽어보듯, 높은 시점에서 이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붓끝은 시대를 넘어, 헛된 야망을 좇아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인간의 교만을 서늘하고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웅장함 속에 감춰진 붕괴의 조짐

멀리서 보면 바벨탑은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문명의 결정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브뢰헬은 이 거대한 탑의 민낯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해 두었습니다. 탑은 완성되기도 전에 벌써 오른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으며,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물 곳곳에는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릴 듯한 불안한 조짐이 역력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배제한 채 세워지는 인간 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시각적 통찰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완벽한 삶의 성채를 쌓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물질적 풍요는 우리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줍니다. 하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빠진 축적은 아무리 높고 화려할지라도 결국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겉보기에는 하늘에 닿을 듯 견고해 보이지만, 실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기초 위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 저 기울어진 탑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개미처럼 작아진 인간, 비대해진 욕망

그림 속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것은 건축을 지휘하는 니므롯 왕과 쉴 새 없이 돌을 나르고 깎는 노동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탑의 규모에 짓눌려, 정작 그것을 짓는 인간들은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미물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 스스로 흩어짐을 면하고자 시작했던 바벨탑 프로젝트는, 결국 인간을 거대한 욕망의 기계 속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끝없는 스펙 쌓기, 더 넓은 집과 더 높은 지위를 향한 맹목적인 질주 속에서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현대판 바벨탑을 쌓기 위해 밤낮없이 노동하지만, 그 탑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작아지고, 더 소외되며, 더 깊은 공허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진보가 맞이할 단절과 혼란

탑의 꼭대기를 감싸고 있는 어둡고 불길한 하늘의 명암 대조는 머지않아 임할 신의 심판을 암시합니다. 성경은 바벨탑 사건의 결말이 '언어의 혼잡'과 '관계의 단절'이었음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야 할 시선을 자신들의 영광으로 돌렸을 때, 인간은 서로 소통할 수 없게 되었고 세상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하여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된 오늘날,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극심한 외로움과 단절을 겪고 있습니다. 영적 나침반을 상실한 기술적 진보와 제국주의적 야망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쌓아 올린 바벨탑의 꼭대기에는 언제나 서늘한 고독과 소통의 부재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은혜의 뜰로 내려오는 연습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떤 탑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까? 혹시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혹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만의 바벨탑을 쌓으며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브뢰헬의 <바벨탑>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하지만 단호한 경고를 건넵니다. 끝없는 상승만을 갈망하는 우리의 시선을 거두어, 스스로 낮아져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입니다. 진정한 구원과 평안은 우리가 높이 올라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무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쌓아 올린 것들이 위태로워 보이고,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해 조바심이 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 흙빛의 기울어진 탑을 떠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없는 위태로운 축적을 멈추고, 그분의 넓고 안전한 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불안한 상승의 계단에서 내려와, 기꺼이 서로의 발을 닦아주는 겸손과 사랑의 자리로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하늘에 닿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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