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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가정 & 상담

노년의 끝자락에서 마주하는 3가지 후회: 희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나'를 찾아서

OCJ 2026. 9. 14. 06:04

호주 이민 1세대의 삶은 고단한 생존과 성취를 향해 달리는 쉼 없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조금만 더 자리 잡으면', '아이들 대학만 무사히 보내고 나면'이라는 굳은 다짐으로 낯선 땅에서의 피로를 기꺼이 견뎌냅니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무한할 것 같고, 여행도, 쉼도, 나를 위한 작은 보상도 모두 '여유가 생긴 뒤'로 미룰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하지만 60대와 70대의 문턱을 넘어서며, 사람들은 세상의 성취나 물질보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오는 가장 뼈저린 후회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음'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음'에 있습니다.

 

무의미한 체면과 상처 주는 관계에 얽매여 소진해버린 시간

이민 사회는 좁고, 특히 한인 커뮤니티나 이민 교회라는 제한된 관계망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깊이 의존하게 됩니다. 평판을 잃을까 두려워, 혹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내'라는 기독교적 미명 아래 상처를 주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관계조차 끊어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착취하듯 내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경계 없는 맹목적인 수용만을 진정한 사랑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의 고단함 속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무리의 요구를 뒤로하고, 홀로 산으로 가시며 당신만의 시간과 영적, 정서적 경계를 명확히 지키셨습니다. 지나고 보면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무의미한 감정 소모에 그토록 애쓸 필요는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진정으로 아쉬운 것은 떠나간 인연이 아니라, 억지스러운 관계 속에서 상처받으며 흘려보낸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안식'을 끊임없이 내일로 미룬 것

이민 가정의 부모님들은 자신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에 깊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부부끼리 여행 한번 가자는 말에도 돈이 아깝다며 주저하고, "은퇴하면, 비즈니스 정리하고 나면 그때 여유 있게 몸을 돌보지"라며 삶의 기쁨을 끊임없이 유예합니다. 하지만 막상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면 몸이 따라주지 않아 깊은 좌절감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도서 3장 12-13절은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과 기쁨은 모든 의무를 다 마친 후 은퇴 후에나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매일의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땅히 누려야 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건강과 체력이 허락할 때 창조 세계를 누리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기뻐하는 것은 결코 사치가 아니라, 창조주를 향한 적극적인 감사입니다.

 

가족을 위한 헌신 속에 정작 잃어버린 '나'의 고유성

자녀의 주류 사회 진입이 곧 나의 성공이라 믿으며 모든 것을 쏟아붓고, 스스로를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로만 규정하며 버텨온 삶입니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달려오다, 자녀가 장성하여 독립하고 난 뒤의 텅 빈 집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라는 낯설고 서글픈 질문을 처음 마주하게 됩니다.

 

가족을 위한 헌신과 책임감은 참으로 숭고하고 성경적인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족과 나를 동일시하며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융합되어 버린다면, 정작 하나님이 고유하게 빚으신 '나'라는 존재는 철저히 소외되고 맙니다. 가족과 깊이 연합하여 사랑하면서도 나 자신의 고유성을 잃지 않는 건강한 심리적 독립과 자아분화가 필수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스스로를 향한 건강한 돌봄과 존중 없이 이루어진 희생의 끝에는 결국 텅 빈 공허함과, 살아보지 못한 내 인생에 대한 깊은 억울함이 자리할 위험이 큽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이민 생활의 거친 풍랑 속에서 가정을 굳건히 지켜낸 그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눈부시게 위대합니다. 하지만 그 위대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단 한 번뿐인 인생의 무대에서 끝내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돌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어야 하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나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는 시간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인생의 후반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갑작스러운 이기심이 아니라, 이제라도 내 삶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자리'를 정성껏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노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왜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따뜻하지 못했을까"라고 후회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삶을 온전히 사랑하고, 참으로 기쁘게 누렸다"고 평안히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