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보기 →평화를 말하며 폭탄을 투하하는 세계, 우리에게 진짜 '샬롬'은 있는가
[OCJ 논설] 주요 이슈: 2026년 8월 19일 가자지구 평화 협상 중 발생한 이스라엘의 치명적인 민간인 지역 공습 사태

2026년 8월 19일, 세계의 이목은 중동의 평화 협상 테이블로 향해 있었다. 미국의 특사가 방문해 가자지구의 휴전과 인질 석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은, 지루하고 참혹한 전쟁에 지친 이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가자지구의 난민촌과 민간인 거주 구역에는 또다시 치명적인 공습이 가해져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다. 협상 테이블 위에서는 '평화'와 '휴전'이라는 단어가 오가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파괴가 자행되는 이 기만적인 현실은 오늘날 국제 사회의 지정학적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와 외교가 말하는 평화란 과연 무엇인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셈법에 따라 주도되는 휴전 협상은, 종종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기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할 때가 많다. 한 손으로는 평화 조약서에 서명할 펜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무기의 버튼을 누르고 있는 세계의 지도자들을 보며 우리는 깊은 탄식을 금할 수 없다. 무력과 억압으로 유지되는 일시적인 교전 중단은 결코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다음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끔찍한 유예 기간일 뿐이다.
수천 년 전,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러한 인간의 얄팍한 평화를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4). 뼈아픈 상처를 싸매고 곪아 터진 증오의 뿌리를 뽑아내지 않은 채 겉으로만 읊조리는 평화는 거짓이다. 진정한 평화, 즉 성경이 말하는 '샬롬(Shalom)'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온전한 생명의 상태를 의미한다.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얻어내는 국가적 안보나 경제적 이익은 결코 샬롬의 토대가 될 수 없다.
오늘날의 지정학적 긴장과 끝없는 분쟁의 뉴스를 대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한 방관자나 비관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총칼로 세워지는 제국의 평화가 아닌, 십자가의 희생으로 막힌 담을 허무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억울한 자들의 통곡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기적인 진영 논리와 탐욕의 카르텔을 복음의 진리로 단호히 비판해야 한다. 우리 사회와 교회부터 먼저 '말뿐인 평화'를 넘어, 소외된 자들의 상처를 직접 매만지는 '참된 샬롬'의 피스메이커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예레미야 6:14
#가자지구 #평화협상 #지정학적위기 #샬롬 #기독교사설
'오피니언 > OCJ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계에게 도덕을 외주화할 것인가: '자율형 AI' 시대와 책임의 무게 (0) | 2026.08.22 |
|---|---|
| 기계와 연결된 21개의 뇌, 인간의 영혼은 어디로 향하는가 (0) | 2026.08.21 |
| 100번째 우주선과 빛을 품은 심우주, 영원을 향한 인류의 항해 (0) | 2026.08.19 |
| 화성의 두 달력에 새겨질 인류의 발자국: 우주를 향한 탐구, 그 기저에 흐르는 창조의 신비 (0) | 2026.08.18 |
| '진실'이 해킹당하는 시대, 인공지능의 거짓말 앞에 선 신앙의 자리 (0) | 2026.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