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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아니아 리포트] "음식은 곧 문화적 정체성"… 다문화 청년이 만성 질환의 벽을 허무는 법

OCJ|2026. 4. 24. 04:55

호주 내 다문화 가정에서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과 향수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하지만 글루텐을 섭취할 수 없는 '셀리악병(Coeliac disease)'과 같은 만성 자가면역 질환이 문화적 정체성과의 단절을 가져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호주 퍼스(Perth)에 거주하는 레바논계 호주 청년 주드 수산(Jude Soussan)의 이야기는 질환과 문화적 배경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이해와 배려를 가져야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주드 수산 씨에게 아침 식사로 즐겨 먹던 레바논 전통 빵 '마나이시(Mana'eesh)'는 문화적 유산이자 가족과 공동체를 이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15세 때 셀리악병 진단을 받으면서 그녀의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주드 씨는 "밀가루 등 글루텐이 포함된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면서, 레바논 문화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아랍 공동체 내에서 글루텐 프리(Gluten-free)나 교차 오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이나 식사 자리에서 소외감을 겪어야 했습니다.

셀리악병은 밀, 보리, 호밀 등에 포함된 글루텐 단백질에 장내 점막이 면역 반응을 일으켜 영양분 흡수를 방해하는 심각한 자가면역 질환입니다. 호주 웨즐리 연구소(Wesley Research Institute)의 자료에 따르면, 호주인 약 70명 중 1명 꼴로 이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환자의 80% 이상(기존 약 20%만 진단받음)이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글루텐 섭취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주드 씨와 같은 다문화 배경의 사람들에게는 전통 음식의 핵심 식재료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신체적, 정신적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UNSW)의 영양학 전문가 네마 하이바(Nema Hayba) 박사는 "아랍과 레바논 문화권에서 밀은 식생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며, 적절한 안내 없이 질환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겪는 고립감을 강조했습니다. 시드니 대학교(University of Sydney)의 호주 음식·문화·사회 네트워크 공동 의장인 테레사 데이비스(Teresa Davis) 부교수 역시 "이주민에게 전통 음식은 낯선 환경에서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위안이자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큰 기둥"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주드 수산 씨는 이러한 단절에 좌절하지 않고,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그녀는 아랍어로 '숟가락'을 뜻하는 연극 <밀아카(mil'aqa)>를 직접 기획하고 무대에 올렸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글루텐이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레바논 전통 요리를 만들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합니다. 유머를 통해 아랍 공동체와 호주 사회 전반에 셀리악병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식단의 한계를 넘어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 것입니다.

다문화 사회인 호주에서 만성 질환은 개인의 의료적 문제를 넘어 공동체의 이해와 포용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하이바 박사의 조언처럼, 각자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의료진과 영양 전문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질환이라는 장벽 앞에서도 유쾌하게 다리를 놓아가는 주드 씨의 행보는, 호주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배려와 수용의 자세를 따뜻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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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음식은 우리의 영혼을 채우고 공동체를 묶어주는 강력한 언어입니다. 오세아니아 지역의 다문화 이주민과 유학생들에게 전통 음식의 부재는 단순한 입맛의 문제를 넘어 향수와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만성 질환'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유머'와 '연극'이라는 창의적인 도구로 극복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신앙 공동체와 교회가 식탁의 교제(Fellowship)를 중시하는 만큼, 알레르기나 자가면역 질환으로 인한 소수의 식이 제한을 가진 이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고 포용하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