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보기 →어둠 속에서 피어난 기독 여성 교육의 새벽별, 광주 김필례 이야기
한국 기독교 역사와 독립운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1891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광주와 서울을 중심으로 평생을 기독교 교육과 여성 계몽, 그리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소심당 김필례 선생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믿음과 애국의 가문에서 자라났습니다. 첫째 오빠 김필순과 언니 김순애, 그리고 조카 김마리아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가문은 한국 근현대사의 십자가를 짊어진 대표적인 기독교 독립운동 가문이었습니다.

김필례는 한국 여성 최초의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 도쿄여자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미국 조지아주 애그니스 스콧 대학과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유학하며 국제적인 감각과 깊은 신앙을 다졌습니다. 귀국 후 그녀는 광주 수피아여학교와 서울 정신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일제강점기라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영적, 지적 눈을 뜨게 한 시대의 선각자였습니다. 최근 2021년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 받으며 그녀의 헌신적인 독립운동과 국가 재건의 공로가 다시금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김필례의 삶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성경적 헌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단순히 교회 안에 머물지 않고 시대의 아픔과 민족의 고난 한가운데로 흘러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신앙적 결단은 1919년 3.1운동 당시의 행적입니다. 일본 유학 중이던 조카 김마리아가 목숨을 걸고 숨겨온 2.8 독립선언문을 광주에 있던 김필례의 자택에서 함께 복사하고 배포함으로써, 이 선언문이 3.1운동의 거대한 도화선이 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1937년 광주 수피아여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시절,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옥고를 치러야 했고, 수피아여학교는 신앙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진 폐교라는 뼈아픈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흥학관 등에서 야학을 열어 지방의 문맹 여성들에게 한글과 성경을 가르쳤고, 억압받던 조선의 여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인격체로서 자아를 찾도록 영적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힘든 희생이 따를 줄 알면서도 좁은 길을 선택한 그녀의 발걸음은 철저히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었습니다.
김필례가 사회와 교계에 미친 실질적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그녀는 1922년 김활란, 유각경과 함께 한국 YWCA를 창설한 주역입니다. 이를 통해 기독 청년 여성들을 위한 교육 현장을 마련하고, 조혼 폐지, 공창제 폐지 등 불평등한 관습을 타파하는 기독 여성 인권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해방 후 그녀는 신사참배 거부로 문을 닫았던 여학교들의 복교와 정상화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광주 수피아여자중학교와 서울 정신여자중학교 교장, 정신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며 수많은 기독 여성 리더들을 배출했습니다. 특히 광주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아라 선생 역시 수피아여학교 시절 김필례의 지도를 받으며 신앙과 민족의식을 키운 인물입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을 맡아 전쟁으로 무너진 여전도회의 재건을 이끌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미국 장로교 북장로회의 재정 지원을 이끌어내며 전국 지교회의 여성 사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튼튼한 반석을 놓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의 한인 크리스천들은 김필례의 삶에서 세 가지 강력한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순결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강요 앞에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겠다는 그녀의 신사참배 거부 신앙은, 세속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물들기 쉬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둘째, 행함이 있는 믿음과 사회적 책임입니다. 그녀에게 신앙과 삶, 영성과 사회적 실천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억압받는 여성과 잃어버린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그녀의 삶은,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셋째, 다음 세대를 향한 끊임없는 투자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야학을 열고 학교를 재건하며 인재를 길러낸 그녀의 비전은, 이민 사회와 낯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해야 하는지 깨닫게 합니다.
결론
김필례 선생은 칠흑 같이 어두웠던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기독교 교육의 새벽별이었습니다. 개인의 안위보다 민족과 다음 세대를 먼저 사랑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삶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그녀가 뿌린 눈물의 기도와 헌신의 씨앗은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 전반에 거대한 영적 숲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아,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진리와 사랑의 빛을 발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커뮤니티 >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도산 안창호 이야기: 민족의 스승을 넘어 미주 한인 교회의 씨앗이 된 참된 신앙인 (0) | 2026.09.25 |
|---|---|
| 한국교회의 새벽을 깨운 영적 거장 길선주 목사의 삶과 신앙 (0) | 2026.09.25 |
| 영적 불모지를 개간한 한국의 사도 바울, 제주도 선교사 이기풍 목사 (0) | 2026.09.22 |
| 조선의 엘리야, 죽음으로 믿음을 증명한 사명자 박관준 장로 이야기 (0) | 2026.09.21 |
| 십자가의 사랑으로 민족을 품다, 오산학교 설립자 남강 이승훈 장로 이야기 (0) | 2026.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