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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영적 불모지를 개간한 한국의 사도 바울, 제주도 선교사 이기풍 목사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의 독자 여러분에게 섬이라는 환경은 낯설지 않은 삶의 터전이자 선교의 현장입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지형,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토속 신앙이 뿌리내린 섬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사역이 아닙니다.
이기풍 목사는 한국 장로교회가 배출한 최초의 목사 7인 중 한 명이며, 한국교회가 파송한 제1호 타문화권 선교사입니다. 1865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싸움과 술을 즐기며 평양 저잣거리를 주름잡던 인물이었습니다. 초기 서양 선교사들을 극심하게 핍박했으며, 1890년에는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던 마포삼열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큰 부상을 입히고 교회를 훼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이토록 강팍한 핍박자를 온전한 사명자로 빚어내셨고, 그는 훗날 가장 어둡고 척박한 땅이었던 제주도로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기풍 목사의 삶은 철저히 성경적인 회심과 순종의 여정이었습니다.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원산으로 피난을 갔던 그는 스왈른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친 그는 자신에게 돌을 맞았던 마포삼열 선교사를 직접 찾아가 눈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후 1907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한국교회 독노회의 결정에 따라 조선의 예루살렘을 꿈꾸며 제주도 선교사로 자원하여 떠납니다.
당시 제주도는 잦은 민란과 신축교난 등으로 육지 사람과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해 있었고, 미신과 우상숭배가 섬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는 언어의 장벽과 풍토병, 극심한 굶주림과 주민들의 살해 위협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뱀을 신령으로 섬기며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려던 무당의 굿판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출해낸 일화는 그의 영적 담대함을 잘 보여줍니다.
이토록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에는 윤함애 사모의 헌신이 함께했습니다. 엘리트 여성이었던 윤 사모는 굶주린 자들과 나병 환자들을 직접 먹이고 입히며 밤낮으로 간호했고, 이러한 부부의 희생적인 사랑은 굳게 닫혀 있던 제주 도민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기풍 목사가 남긴 실제적인 영향력은 한 지역의 복음화를 넘어 한국 기독교 역사 전체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13년간의 제주 사역을 통해 성내교회를 비롯한 3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며 영적 불모지였던 제주도에 튼튼한 교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후 육지로 돌아와 전라도 광주, 순천, 고흥, 벌교 등지에서 목회하며 지역 사회를 계몽하고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1921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대 총회장이라는 교단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의 시선은 언제나 낮고 소외된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은퇴할 나이인 고령이 되어서도 목회자가 없어 자원하는 이가 없는 여수의 작은 외딴섬 금오도 우학리교회로 스스로 떠났습니다. 교권이나 명예에 안주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이 필요한 척박한 땅을 스스로 찾아간 그의 행보는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섬김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실천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 크리스천들은 이기풍 목사의 생애를 통해 세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절대적인 능력입니다.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며 핍박하던 자가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세우는 사도로 변화된 것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나 완악한 영혼도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온전히 변화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 성육신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기풍 목사와 윤함애 사모는 단순히 입술로만 복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이웃이 되어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우리 역시 각자가 처한 삶의 터전에서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실천적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타협하지 않는 순교 신앙입니다. 이기풍 목사는 일제강점기 말기, 70대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 극심한 고문을 받았고 결국 1942년 그 후유증으로 순교했습니다. 세속주의와 적당히 타협하기 쉬운 오늘날의 시대정신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고백하며 생명까지 바쳤던 그의 일사각오 신앙은 우리의 잃어버린 야성을 깨우는 거룩한 채찍질이 됩니다.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이기풍 목사의 삶은 한 편의 살아있는 사도행전과 같습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핍박의 돌멩이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품어내고, 복음을 위해 기꺼이 척박한 섬마을의 한 알의 밀알이 되었던 그의 발자취는 참된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비록 영적으로 척박한 광야나 외로운 섬과 같을지라도, 이기풍 목사가 품었던 그 십자가 복음의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오늘날에도 또 다른 생명의 역사를 써 내려가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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