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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생 친구' 제임스 T. 레이니 목사 98세로 별세

OCJ 2026. 8. 19. 04:46

[OCJ 뉴스 브리핑]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며 한반도 평화에 헌신한 제임스 T. 레이니(James T. Laney) 에모리대 명예총장(전 캔들러 신학대학원 학장)이 2026년 8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자택에서 향년 98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은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파국을 막아낸 결정적 중재자이자, 80년 가까이 한국의 현대사와 궤를 함께한 진정한 '한국의 벗'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민주화, 그리고 북핵 위기까지… 80년을 이어온 한국과의 인연 1927년 미국 아칸소주에서 태어난 레이니 전 대사와 한국의 인연은 그가 19세이던 1947년 미 육군 방첩대(CIC) 요원으로 파병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예일대 졸업 후 1959년 선교사로 다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연세대 신학과에서 윤리학을 강의하며 청년들을 지도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훗날 한국을 이끌게 될 민주화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맺으며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아픔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 1977년부터 16년간 에모리대 제17대 총장으로 재직한 그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 저명인사를 교수진으로 영입하며 에모리대를 세계적인 연구 중심 대학으로 도약시켰습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를 구한 외교적 결단 그의 삶이 다시 한번 한반도와 강하게 교차한 것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면서입니다. 1994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미국의 대북 군사 타격이 거론되던 일촉즉발의 1차 북핵 위기 상황에서, 그는 클린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득했습니다. 나아가 에모리대 총장 시절 인연을 맺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함으로써 전쟁의 위기를 막고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기려 1997년 수교훈장 광화장을 서훈했으며, 1996년에는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한미 우호 증진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밴 플리트상(Van Fleet Award)'을 받았습니다.

유족으로는 76년을 해로한 아내 베르타 래드퍼드 레이니와 5명의 자녀, 16명의 손주, 12명의 증손주가 있습니다.


[OCJ 에디터의 노트] 제임스 T. 레이니 전 대사의 삶은 곧 한미 동맹 80년의 궤적 그 자체였습니다. 단순한 외교관을 넘어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이해했던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한국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올해 3월 태평양세기연구소(PCI) 행사에서 "미국이 한미 간의 견고한 다리를 일방적인 도개교로 바꿨다"고 지적하며 "이제 한국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고 남긴 그의 마지막 당부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주도적인 외교 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한국 사회에 묵직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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