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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하나님의 서기이자 시대의 예언자, 장로 부흥사 김인서 이야기
독립의 열망과 일제의 탄압으로 짙은 어둠이 깔려 있던 20세기 초반 한반도, 그곳에는 예레미야처럼 민족과 교회를 위해 눈물 흘리며 시대의 방향을 제시한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교회의 예언자이자 문서 선교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인서 장로입니다.

1894년 함경남도 정평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때 이동휘 장군의 연설에 감명을 받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상해 임시정부의 함북 연통제 책임비서로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체포되어 3년 반의 옥고를 치르기도 한 투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력이나 정치적 투쟁을 넘어,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살 길은 오직 기독교 신앙의 생활화에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했음에도 오랜 세월 목사 안수를 미루고 평신도 사역자인 장로로서 부흥회와 문서 사역에 매진한 그의 삶은, 목회자 중심의 사역이 주를 이루던 당시 교계에 신선한 충격이자 묵직한 도전을 던져주었습니다. 현대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인 크리스천들에게 그의 삶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되돌아보게 합니다.
김인서 장로의 삶은 그 자체가 성경적 소명을 살아내는 치열한 영적 전투였습니다. 그는 조국이 무력으로 침략당하는 비극 속에서도, 한국은 일본의 무력 진출과 달리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들고 이웃 중국, 만주, 몽골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한민족의 운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교회에 달려 있다는 그의 역사관은 맹목적인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거룩한 비전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문서 사역입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서기로 부르며 1932년 기독교 월간지 신앙생활을 창간했습니다. 복음 신앙, 영화 운동, 인화주의라는 3대 강령을 내걸고 일제의 폭압으로 강제 폐간당할 때까지, 그리고 한국전쟁 중 피난지 부산에서 속간하기까지 그는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당시 불어닥친 극단적 신비주의나 무교회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도 그는 기성 교회의 가치와 올바른 신학을 지켜내기 위해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하며 고독한 십자가를 졌습니다. 평신도의 자리에서 그는 조선과 만주 일대를 돌며 불을 토하는 부흥사로 헌신했고, 훗날 1954년 부산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북성교회에서 목양에 쏟아부었습니다.
김인서 장로가 한국 사회와 교회사에 남긴 족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실질적입니다.
첫째로 그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가장 확실한 기록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신앙생활 잡지와 수많은 기록물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초기 역사와 영적 거장들의 삶을 복원하는 핵심 사료가 되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를 비롯한 신앙 선배들의 행적과 순교자들의 삶이 그의 펜 끝을 통해 생생하게 보존되고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둘째로, 그는 상처받은 영혼들의 치유자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 부산 보수산 꼭대기 천막교회에서 그가 전한 예루살렘을 생각하라라는 피 맺힌 설교는 가족을 잃고 굶주림에 지친 피난민들의 가슴에 회개와 위로의 눈물을 쏟아지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부흥회는 단순한 감정적 폭발이 아니라, 시대적 고난을 말씀으로 조명하고 영적 각성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남북 교회를 향해 무섭게 비판하면서도 인재를 아끼자며 화합을 호소한 그의 혜안은 당대 교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김인서 장로의 치열했던 삶은 오늘날 세속화와 개인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현대 성도들에게 세 가지 분명한 영적 교훈을 제시합니다.
첫째, 문서를 통한 진리 수호의 사명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생산하고 소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서기라는 정체성으로 바른 진리를 기록하고 전파한 그의 모습은,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한 현대의 지성과 미디어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합니다.
둘째, 민족과 교회를 가슴에 품는 예언자적 기도입니다. 조국의 고난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눈물로 엎드렸던 그의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세아니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 성도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와 조국, 그리고 무너져가는 열방의 영적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직분보다 사명에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장로의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부흥사이자 문서 운동가로 활약했습니다. 이름과 자리보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 그 자체에 평생을 바친 그의 겸손한 열정은, 형식에 빠지기 쉬운 현대 교회에 참된 제자의 길이 무엇인지 강력하게 웅변합니다.
김인서 장로는 화려한 조명보다 십자가의 고난을 택했고, 침묵해야 할 때 펜을 들어 진리를 외쳤으며, 절망의 시대에 복음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선포한 믿음의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눈물방울과 잉크로 쓰인 신앙의 기록들은 지금도 살아 숨 쉬며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깨우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각자가 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서기가 되어, 이 시대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거룩한 믿음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예레미야 9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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