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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가정 & 상담

"우리는 부모의 불행을 물려받았는가?"… 시드니 한인 이민 가정의 치유와 회복

OCJ 2026. 10. 11. 04:58

[OCJ 가정·상담]  시드니에 거주하는 1.5세 및 2세 한인 청년들과 상담 및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마주하게 되는 깊은 탄식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불행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호주 사회에 낯선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했던 이민 1세대 부모들의 헌신 이면에는, 생존을 위한 지독한 스트레스와 억눌린 감정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짙은 그늘은 알게 모르게 자녀 세대의 정서적 유산으로 대물림되곤 합니다. 호주 내 한인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며 이민자들의 정신건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우리 가정 내에 흐르는 '정서적 대물림'을 돌아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신체적 특징이나 DNA만을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부모의 웃는 습관, 찡그리는 표정, 언어 습관, 심지어 '감정을 처리하는 습관'까지 무의식적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많은 이민 가정의 자녀들이 언어 장벽과 경제적 불안에서 비롯된 부모의 잦은 한숨, 혹은 비관적인 태도를 보고 자라며 자신도 모르게 불안과 우울을 내재화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백 마디 말보다 부모의 '정서'를 먼저 배웁니다. 이로 인해 어떤 이들은 부모 세대의 상처와 트라우마, 심지어 관계적 실패까지 자신이 고스란히 저주처럼 물려받았다고 착각하며 깊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불행은 단일한 '사건'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해석'이라는 점입니다. 이민 초기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모든 상황을 방어적이고 비판적으로 해석해야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부모 세대의 방식을 자녀가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사에 안 될 것만 골라서 이야기하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이는 곧 '다른 정서를 학습하고 새로운 해석 방식을 배운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상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익숙한 불행'을 편안하게 느끼고, 도리어 '어색한 행복'을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과거의 우울과 불안의 손을 다시 잡아서는 안 됩니다. 다소 어색하더라도 나를 존중해 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건강한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도 우리는 과거의 굴레에 얽매인 운명론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좋은 영적 동역자와 신앙 공동체를 통해 언제든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수정론자'들입니다.

호주 내 여러 연구와 정신건강 통계에 따르면, 한인 이민자들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과 정신건강 치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stigma) 때문에 적절한 심리적 지원을 받는 비율이 타 문화권에 비해 현저히 낮습니다. 특히 가족의 명예를 중시하는 가치관은 가정 내의 아픔을 숨기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문제를 직면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근 시드니를 비롯한 호주 전역에는 이중언어가 가능하며 이민 가정의 문화적 특수성을 깊이 이해하는 한인 심리상담가와 가족 치료 서비스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트라우마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종착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묵은 숙제를 새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오세아니아의 모든 한인 이민 가정들이 '익숙한 불행'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내고, 십자가의 은혜와 건강한 공동체의 지지 속에서 '어색하지만 눈부신 행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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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이민 사회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가족은 가장 든든한 안식처인 동시에, 때로는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 세대의 생존 투쟁이 남긴 정서적 유산을 비난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이제는 신앙과 전문적인 치유를 통해 그 굴레를 끊어내야 할 때입니다.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호주 한인 교회의 인식이 점차 개선되고, 각 가정 내에서 치유를 위한 열린 대화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호주한인사회 #가족상담 #정신건강 #세대갈등 #기독교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