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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장바구니 물가, 국가가 잡는다?" 호주 정계 달구는 '국영 슈퍼마켓' 설립 논쟁
호주 전역을 휩쓸고 있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대형 마트의 독과점 논란 속에, 주거비와 함께 가계 경제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식료품 가격을 낮추기 위한 파격적인 제안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른바 ‘국영 슈퍼마켓(Government-owned supermarkets)’의 도입입니다.

최근 호주 녹색당(The Greens) 산하 싱크탱크인 그린 인스티튜트(Green Institute)는 연방 정부가 직접 슈퍼마켓을 운영해 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의 콜스(Coles)와 울워스(Woolworths) 매장 200곳을 인수하고, 미개척 상권에 400개 이상의 국영 매장을 신설해 전국적인 유통망을 구축하게 됩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가는 경제적 혜택입니다. 보고서는 국영 슈퍼마켓이 달걀, 우유, 과일, 채소, 육류, 치즈 등 필수 식재료를 현재 시장 가격의 약 3분의 2 수준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식료품 가격을 평균 20% 이상 낮추고, 4인 가구 기준 주당 60달러, 연간 3,134달러의 장바구니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이 야심 찬 구상에는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합니다. 국영 슈퍼마켓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향후 5년간 약 251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호주 정부의 의약품 보조금 제도(PBS)보다 규모가 큰, 상위 10대 정부 지출 프로그램에 맞먹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다만, 초기 구축 비용이 투입된 이후에는 매장 수익을 통해 자체적으로 운영 자금을 조달(Self-funded)하는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전 녹색당 하원의원이자 해당 정책 추진을 주도하고 있는 맥스 챈들러-매더(Max Chandler-Mather)는 "단일 오커스(AUKUS) 핵잠수함 건조 비용의 절반만 투자해도, 호주 가정의 장바구니 비용을 수천 달러 절약해 줄 수 있는 공공 소유의 슈퍼마켓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필수재의 가격을 낮추려면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를 공공 소유로 차단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급진적 대안이 등장한 배경에는 호주 식료품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콜스와 울워스, 이른바 ‘콜스워스(Colesworth)’로 불리는 두 거대 기업은 호주 시장의 67% 이상을 장악한 채 막대한 권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는 최근 몇 년간 이들이 '가격 인하(Prices Dropped)'나 '다운 다운(Down Down)' 같은 허위 할인 행사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폭리를 취했다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례 없는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국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탄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여론의 반응은 호의적입니다. 그린 인스티튜트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극우 성향인 원내이션당(One Nation) 지지층의 과반수를 포함해 유권자의 80% 이상이 장바구니 물가를 낮추기 위한 국영 슈퍼마켓 도입에 어느 정도 또는 강력히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251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비용이 제시되지 않았고, '적극 찬성' 비율은 37%에 그쳤다는 점은 정책적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정책은 국제적인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시장이 주도하고 있는 '시립 식료품점(City-owned grocery stores)' 5곳의 시범 운영 모델을 벤치마킹한 결과물입니다. 생활고 해결을 위해 필수 서비스에 대한 공공 개입을 주창하는 진보 성향 포퓰리즘 정치가 서구권에서 호응을 얻는 현상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정치적 관점에서 이번 제안은 녹색당의 절박한 승부수이기도 합니다. 지난 2025년 연방 총선에서 애덤 밴트(Adam Bandt) 전 당대표와 챈들러-매더를 포함한 유력 의원들이 대거 낙선하고, 당 지지율이 12%대에 정체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카드입니다. 라리사 워터스(Larissa Waters)의 건강 문제로 지난주 갑작스럽게 당대표직을 이어받은 데이비드 슈브리지(David Shoebridge) 신임 대표 역시 "이 정책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며 공론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직접 슈퍼마켓을 운영한다는 구상은 막대한 세금 투입과 시장 개입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치열한 찬반 논쟁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의가 이토록 커진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 실패'와 '거대 유통 기업의 횡포'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좌절감에 있습니다. 거침없이 치솟는 생활고 앞에서, 호주 정치권과 유통업계가 과연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놓을지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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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시장 경제 체제에서 '국가가 소유하는 슈퍼마켓'이라는 아이디어는 자칫 과도한 개입이나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려 80%에 달하는 호주 유권자들이 이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유고브 설문 결과는, 현재 호주의 식료품 독과점 체제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방증합니다. 2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한 이 급진적 정책이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 이윤만을 추구하며 가격을 올려온 유통 공룡들에게 강력한 경고장이 되기에는 충분해 보입니다.
#호주물가 #국영슈퍼마켓 #콜스울워스독과점 #호주정치 #생활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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