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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톱밥 흩날리는 작업실에 임한 십자가의 신비
어느 낡고 비좁은 목공소의 문을 열고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코끝에는 짙은 나무 냄새가 맴돌고, 바닥에는 방금 깎아낸 듯한 나무 톱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던 눈부신 후광이나 평화롭고 고결한 성가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땀 흘려 밥벌이를 해야 하는 몹시 가난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가족이 거친 숨을 내쉬며 서 있을 뿐입니다.

19세기 영국,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관찰하여 화폭에 담고자 했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핵심 창립 멤버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는 불과 20세의 젊은 나이에 이토록 파격적인 작품,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과 찰스 디킨스 같은 당대의 문호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성가족을 지나치게 남루하고 사실적으로, 심지어 흉측하게 그렸다며 젊은 화가에게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밀레이의 시선은 세상의 우아한 기준이 아닌, 성경의 가장 깊은 진리를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화려하게 이상화된 종교화의 허울을 벗겨내고, 일상의 가장 낮고 누추한 곳에 임하신 진정한 '성육신(Incarnation)'의 의미를 극도의 사실주의로 빚어낸 것입니다. 그림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톱밥 흩날리는 작업실 속에 감춰진 깊은 신앙의 신비를 함께 들여다보시겠습니까.
톱밥 위로 떨어진 핏방울, 예비된 십자가
그림의 중앙을 가만히 바라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을 짜는 노동을 돕던 어린 예수가 그만 삐져나온 못에 찔려 손바닥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앳된 손바닥에서 흐른 붉은 피는 어느새 소년의 발등 위로 뚝뚝 떨어져 고입니다. 손과 발에 맺힌 이 선명한 핏자국은, 훗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겪게 될 성흔(Stigmata)을 너무도 뚜렷하고 마음 아프게 예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아들에게 다가가 상처 난 볼에 입을 맞춥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단순히 다친 아이를 걱정하는 어미의 마음을 넘어, 훗날 다가올 비극적인 십자가의 고난을 직감한 듯한 깊은 슬픔과 수심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때 화면 오른쪽에서, 허리에 짐승의 털옷을 두른 소년이 조심스레 다가옵니다. 어린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의 상처를 씻기 위해 물을 가득 담은 그릇을 정성껏 떠오고 있습니다. 이는 훗날 요단강에서 이루어질 그의 세례 사역을 상징하는 아름답고도 시린 메타포입니다. 인류를 구원할 십자가의 위대한 사역은 저 멀리 구름 위가 아니라, 이처럼 먼지 나는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흐른 작은 핏방울 속에서 이미 예비되고 있었습니다.
손톱 밑의 때와 굳은살, 거룩한 노동의 무게
밀레이가 그려낸 또 다른 감동은 인물들의 거친 피부 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친 아들의 상처를 살피기 위해 내민 아버지 요셉의 손을 보십시오. 굵게 불거진 핏줄, 딱딱하게 박인 굳은살, 그리고 손톱 밑에 까맣게 낀 때까지. 화가는 이 거친 손을 통해 땀 흘려 일하는 노동하는 삶의 무게와 그 안에 담긴 숭고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거룩함'을 잘 정돈되고 깨끗한 것, 혹은 세속적인 수고와 단절된 고요한 상태로만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진짜 거룩함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톱밥이 날리고 땀 냄새가 진동하는 목공소에서 우리와 똑같이 일하고,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손톱 밑에 때가 끼도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평범하고 남루한 일상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가장 거룩한 성소임을 밀레이는 그림을 통해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요셉의 목공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지치고, 뜻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못에 찔린 듯 상처받으며, 치열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굳은살이 배겨갑니다. 때로는 이렇게 분주하고 거친 내 삶의 한복판에 과연 하나님이 계실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밀레이의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는 지친 우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신앙의 자리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예배당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당신이 땀 흘려 일하는 사무실의 책상 위, 가족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를 하는 주방,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르는 퇴근길의 지하철 안. 그 톱밥 날리는 분주한 일상의 한복판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이번 주간, 삶의 현장에서 상처를 입거나 지치는 순간이 온다면 이 명화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못에 찔려 피 흘리면서도 우리의 가장 낮은 일상으로 찾아오신 주님께서, 당신의 굳은살 박인 손을 어루만지며 섭리하고 계심을 새롭게 발견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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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에버렛밀레이 #부모의집에있는그리스도 #성육신 #십자가고난 #일상의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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