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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

호주 시니어 이민자의 존엄한 노년: 고독의 수용과 사회적 연대를 향하여

OCJ 2026. 9. 11. 06:30

[심층기획]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노년기는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내면의 완성을 기하는 철학적 사유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모국을 떠나 호주 등 이국땅에 뿌리를 내린 시니어 이민자들에게 노년의 의미는 더욱 복합적인 무게를 지닙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해 온 이민 1세대들은, 황혼기에 접어들며 신체적 쇠약과 더불어 깊은 고독이라는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본지는 노년의 한인 이민자들이 마주한 신체적 쇠약과 고독의 실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호주 사회의 지원망과 실천적 지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육체적 쇠약을 마주하며 시니어 이민자들이 겪는 심리적 부담은 언어 및 문화적 장벽과 맞물려 가중됩니다. 2021년 호주 통계청(ABS) 자료에 따르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주 전체 인구의 17.6%가 65세 이상이며, 이 중 36%가 해외에서 출생한 이민자입니다. 적지 않은 한인 시니어들이 영어 구사 능력의 제한으로 의료 현장에서 큰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뒤늦게 호주로 이주한 노년층은 치매나 인지 저하가 발생할 경우, 후천적으로 습득한 영어를 가장 먼저 상실하고 모국어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어 의료진과의 소통에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따라서 이를 개인의 노화 문제로만 자책하기보다는, 호주 사회가 마련한 통역 및 다문화 지원 시스템을 정당한 권리로서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이민자 노년층이 직면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공중 보건의 심각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호주의 노인 복지 관련 기관인 COTA NSW가 50세 이상 성인 2,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그중 25%는 극심한 수준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극심한 외로움을 겪는 이들 중 40%는 대면 사회 활동 참여가 한 달에 한 번 미만이었고, 11%는 자택 밖 외출조차 한 달에 한 번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고독은 결코 사교성 부족이 아니라, 모국과의 단절, 언어적 고립, 자녀 세대와의 가치관 차이 등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문학과 철학은 노년의 고독을 회피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을 대면하는 사색의 시간으로 수용할 것을 권면합니다. 젊은 시절 타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았다면, 노년은 마음의 짐을 기꺼이 벗어던지는 훈련의 시기입니다.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집착과 과거의 성취에서 비롯된 권위를 내려놓고, 자녀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며 홀로 고독을 음미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내면의 성찰과 더불어 지역 사회와의 적극적인 연대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실천 방안입니다. 다행히 호주 내에는 다문화 시니어들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한 방대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1979년에 설립된 호주 한인 복지회(AKWA)를 비롯하여 CASS Care 등 여러 복지 기관에서 한인 시니어 맞춤형 주간 돌봄(Day Care)과 문화 교실을 운영하며 동년배들과의 소통을 돕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정신 건강의 보호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울감이나 향수병, 트라우마 등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고 계신다면, NSW 주정부가 운영하는 '다문화 정신건강 센터(TMHC)'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평일 주간(오전 9시~오후 4시 30분)에 운영되는 '다문화 정신건강 상담전화(1800 648 911)'를 통해 한국어를 구사하는 전문가의 심리 지원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신체가 쇠약해져 가정 내 돌봄이나 요양 시설 입소가 필요해지는 시점에도, 시니어 이민자들은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존중받으며 생활할 절대적 권리가 있습니다. 호주 연방정부의 노인 돌봄 관문인 '마이 에이지드 케어(My Aged Care, 1800 200 422)'를 통해 자립 연장을 위한 필수 서비스를 연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어가 불편하신 경우 '무료 전화 통역 서비스(TIS National, 131 450)'로 전화해 "Korean(한국어)"을 요청하신 뒤, 통역사에게 마이 에이지드 케어로 연결해 달라고 하시면 언어 장벽 없이 심사와 상담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국땅에서 황혼을 맞이한다는 것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써 내려간 장엄한 서사시를 평온하게 마무리하는 과정입니다. 시니어 이민자들의 삶은 그 자체로 거룩한 역사이며, 다음 세대가 호주 사회에 굳건히 서게 한 튼튼한 교량입니다. 다가오는 노년의 하루하루가 외로운 섬에서의 고립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따뜻하게 연대하며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존엄하고 찬란한 축복의 여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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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이민 1세대의 노년은 단순한 신체적 쇠락이 아니라, 이질적인 두 개의 문화와 언어 사이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이들의 숭고한 훈장입니다. 본 기사는 노년층의 외로움과 고립을 개인의 성향 탓으로 돌리지 않고, 제도적·문화적 장벽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큰 시사점을 줍니다. 교민 사회와 현지 종교 단체들이 시니어 이민자들을 사회적 연대망 안으로 이끌어내는 데 더욱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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