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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색채로 피어난 산상수훈

OCJ 2026. 7. 1. 05:13

화폭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을 품은 듯한 원색의 향연이 우리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습니다. 강렬한 빨강과 노랑, 그리고 깊은 파랑의 아크릴 물감들이 빚어내는 생명력 넘치는 색채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백인 중심의 전통적인 서구 성화(聖畵)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이토록 이국적이면서도 신비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현대 화가 로라 제임스(Laura James)의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입니다. 

 


앤티가 바부다계 미국인으로 태어난 로라 제임스는 오랫동안 백인들의 모습으로만 묘사된 기독교 미술 속에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로서의 깊은 갈증을 느꼈습니다. '나의 정체성과 나의 신앙이 온전히 일치할 수는 없을까?'라는 영적 탐구는 그녀를 15세기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오래된 필사본과 성화 양식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녀는 에티오피아의 고유한 성화 기법을 독학으로 연구하며, 자신의 뿌리인 흑인의 영성과 기독교 신앙을 결합한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 냈습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붓질의 결과물이 아니라, 모든 인종과 문화가 하나님의 식탁에 함께 앉기를 바라는 한 화가의 간절한 기도이자 신앙적 헌신 그 자체입니다.

영혼을 깨우는 크고 둥근 눈망울

그림 속 디테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인물들의 독특한 얼굴 묘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화폭을 가득 채운 군중들은 하나같이 크고 둥근 눈을 한 채 중앙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성화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이 과장된 눈망울은 단순히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을 넘어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양 미술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이나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그림 속 사람들의 눈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바라보는 영적 각성'을 상징합니다. 산상수훈을 선포하시는 예수의 입술과 그분의 존재 자체에 완전히 압도되어,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도 한눈팔지 않는 순전한 몰입의 상태입니다. 이들의 맑고 깊은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오늘날 수많은 소음 속에서 살아가며 정작 생명의 말씀 앞에서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린 우리의 영혼이 번쩍 깨어나는 듯한 부끄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원색과 패턴이 빚어낸 다양성 속의 조화

작품은 서구 미술이 발전시켜 온 명암법과 원근법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습니다. 2차원적이고 평면적인 구도 속에서 사람들은 앞뒤의 위계 없이 평등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평면성은 오히려 아크릴 물감이 뿜어내는 강렬한 원색과 만나 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인 생명력과 기쁨을 폭발시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군중들이 입고 있는 옷의 기하학적이고 장식적인 패턴들입니다. 각기 다른 색상과 무늬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화폭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결코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곳이 아님을 웅변합니다. 다양한 인종, 문화, 배경을 가진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라는 하나의 메시지 안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다채로운 시각적 찬양입니다. 복음이 가진 무한한 문화적 수용성이 화가의 붓끝에서 찬란하게 피어난 것입니다.

경계를 허물고 선포되는 영원한 진리

그림의 중심에는 예수가 앉아 있습니다. 예수는 세상을 다스리는 권위자의 모습을 띠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군중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호흡하는 매우 친근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화가가 입체감을 포기하고 직관적인 선과 단순한 색채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성화(Icon)의 본래 목적은 현실 세계를 사진처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평화로운 군중의 모습은, 산상수훈의 첫마디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시각적으로 번역해 놓은 듯합니다. 그 어떤 분열의 장벽도, 인종의 경계도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는 무의미해짐을 이 그림은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분열되고 파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고, 갈등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집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로라 제임스의 <산상수훈>은 깊은 위로와 묵직한 도전을 동시에 던집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화폭 속 사람들처럼 나와 다른 이들을 품어내며 다양성 속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요. 에티오피아의 색채로 피어난 이 눈부신 복음의 현장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도 아름답게 재현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크고 둥근 눈을 빌려,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산상수훈을 온 마음을 다해 경청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