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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차가운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온 신비, 베들레헴의 호적 조사
피터 브뤼헐의 <베들레헴의 호적 조사>: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캔버스를 뚫고 나와 코끝을 스치는 듯한 풍경입니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플랑드르의 한 작은 마을은 호적 조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증명하기 위해 줄을 서고 가혹한 세금을 바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 오늘 우리가 간절히 찾아야 할 한 가족이 조용히 숨어 있습니다.
화가의 숨결
피터 브뤼헐은 16세기 네덜란드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통찰했던 화가입니다.
그는 종교 전쟁의 포화와 스페인의 압제 속에서도 거창한 교리보다는 묵묵히 삶을 견뎌내는 평범한 이들의 얼굴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그릴 당시 플랑드르는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로 인해 백성들의 탄식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습니다.
브뤼헐은 이러한 시대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성경의 이야기를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성당의 제단화가 아닌 가난한 이들의 일상 속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찾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붓끝은 날카로웠지만 그 이면에는 고통받는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과 신앙적 고뇌가 서려 있었습니다.
명화 속에 숨겨진 비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왼쪽의 여관 건물 벽에 붉은 문장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네덜란드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독수리 문장으로 당대인들이 겪던 가혹한 행정적 지배를 상징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얼어붙은 강 위에서 놀거나 땔감을 나르며 각자의 생존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 하단 나귀를 탄 채 푸른 망토를 두른 여인과 커다란 톱을 든 남자가 보입니다.
그들이 바로 인류의 구원자를 품은 마리아와 요셉이지만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화면 오른쪽에는 겨울 식량을 위해 돼지를 잡는 자극적인 풍경이 펼쳐지며 성스러운 가족의 등장을 더욱 무색하게 만듭니다.
브뤼헐은 이렇듯 거룩한 사건을 일상의 소음 속에 철저히 매몰시킴으로써 성육신의 역설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성육신은 신비롭고 장엄한 광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춥고 배고픈 호적 조사의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비루한 행정 절차와 고단한 세금 징수의 현장 한복판으로 자신을 던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과 일상의 무게를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그 무게를 짊어지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작품 속 사람들의 무관심은 역설적으로 그 무관심한 세상조차 품으시려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증명합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그리스도는 가장 평범한 순간이 가장 거룩한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걷는 우리에게
디지털의 속도와 성과의 압박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은 브뤼헐의 마을 풍경보다 훨씬 더 분주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 속에 갇혀 내 곁을 지나가는 작은 기적과 이웃의 아픔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베들레헴의 호적 조사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과제들은 때로 너무나 무거워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하지만 브뤼헐은 그 소란스럽고 차가운 눈밭 위에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 그리스도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속삭입니다.
위대한 신비는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나귀의 발걸음 속에 숨어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분주한 일상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보십시오.
그분은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당신의 문을 두드리며 차가운 당신의 영혼에 따스한 등불을 밝혀주실 것입니다.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누가복음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