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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이민의 땀방울로 구원을 살 수 있습니까: 은혜입니까, 보수입니까
찬송 : ‘주 예수여 은혜를’ 368장(통486)
본문 : 로마서 4장 1~8절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치열한 호주 이민 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뼈저리게 배우고 체득하는 세상의 이치는 '일한 만큼 거둔다'는 철저한 '보수(품삯)의 법칙'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청소와 타일, 요식업과 각종 비즈니스 현장에서 흘린 정직한 땀방울이 오늘날 우리 가족의 안정된 삶과 영주권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 이민자들은 성실한 행위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당연하고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이민자의 삶의 방식이 신앙의 영역으로 넘어올 때, 우리는 종종 치명적인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마저도 내가 교회에서 수고한 헌신과 봉사에 대한 '보수'로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이신칭의)'는 진리를 거부하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로워지려 했던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과 다윗의 역사를 들어 반박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지켜온 율법과 할례라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 구원을 마땅히 받아야 할 '품삯(보수)'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은 율법이 생기기도 전, 할례를 받기도 전인 '무할례시'에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 하나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밧세바를 범하는 끔찍한 죄를 지었던 다윗이 용서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율법적 행위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랐을 때, 하나님은 전적인 은혜로 그의 죄를 가려주셨습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인 '죄 용서와 의롭다 하심'은 우리의 수고와 행위로 얻어내는 보수가 아니라,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도 주일 예배를 지키고, 십일조를 내며,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내가 이렇게까지 수고하고 헌신했으니, 하나님이 내 비즈니스와 자녀의 앞길을 축복해 주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은밀한 보상 심리가 자리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받아야 할 당연한 품삯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호주의 교우 여러분, 오늘 나의 믿음은 은혜입니까, 보수입니까? 호주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안정과 성취, 그리고 무엇보다 값없이 주신 구원은 결코 내 행위의 대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도, 내세울 종교적 이력서도 없습니다. 오직 자격 없는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만을 자랑하며, 그 구원의 감격에 젖어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치열하게 살아온 이민 생활의 습관대로 하나님 앞에서도 나의 수고와 종교적 행위를 내세우며 합당한 보수를 기대했던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자랑할 것 없는 나를 십자가의 피로 덮으시고 의롭다 여겨주신 그 맹렬한 사랑을 기억하며, 오직 값없는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참된 신앙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